어둡고 추운 곳의 기이한 생명체들
고호관 과학 칼럼니스트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상상해 보라고 해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생김새와 생활 방식을 지닌 동식물도 있습니다. 대체로 살기 어려울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그렇습니다.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면 심해가 대표적입니다. 심해는 보통 2킬로미터보다 더 깊은 바닷속을 말합니다. 햇빛이 아주 조금만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물은 0도에 가까울 정도로 차가운 곳이지요.
또, 수압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수심 10킬로미터에서는 수압이 무려 1,000기압이나 됩니다. 이는 1제곱센티미터의 면적을 1t의 무게로 누르는 힘과 같습니다. 우리 몸 전체를 이렇게 강하게 누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단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될 겁니다.
그래서 불과 100~20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심해에 생명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심해에서도 생명체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심해에도 상당히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심해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식물이 살아갈 수 없지만, 동물은 나름대로 적응해 살고 있습니다. 수면 근처에 살다가 죽은 동식물의 사체나 배설물은 심해로 가라앉아 심해생물의 먹이가 됩니다. 또, 심해 열수구 근처에는 지구 내부에서 나오는 미네랄 성분과 열을 이용하는 생태계가 있습니다.
심해에 사는 생물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빛이 없어서 어차피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이 퇴화해 버린 동물이 많습니다. 어떤 동물은 반대로 적은 빛이라도 잘 볼 수 있도록 눈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어떤 종류는 스스로 빛을 내는 기관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빛을 내어 먹이를 유인하거나 짝짓기 상대를 찾습니다.

▲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예를 들어, 초롱아귀는 머리에 촉수가 있고, 그 끝에서 빛을 냅니다. 그 모습이 마치 초롱을 들고 다니는 것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몸보다 입이 매우 큰 펠리컨 장어도 꼬리에 있는 기관에서 빛을 내 먹이를 유인합니다.
이런 심해 어류의 겉모습을 보면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입이 매우 크거나 이빨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크게 나 있다는 점입니다. 위도 잘 늘어나 큰 먹이도 삼킬 수 있습니다. 이건 심해에 먹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한 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또, 심해어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부레가 퇴화했습니다. 부레는 많은 물고기의 몸속에 있는 공기주머니입니다. 물고기는 부레 안의 공기로 부력을 조절해 물속에서 위나 아래로 움직입니다. 상어처럼 부레가 없는 물고기는 몸속에 기름을 많이 쌓아둡니다. 기름은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가라앉지 않을 수 있지요. 심해어 역시 몸속에 기름을 쌓아 부력을 얻습니다.
심해어는 극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희한하게 보이기 쉽습니다. 대부분 높은 압력에 적응해 있어서 그물에 걸려 수면 위로 올라오면 금세 죽는데, 내부 압력 때문에 몸이 부풀어 오르거나 눈이 튀어나오면서 더욱 기괴한 모양이 되기도 하지요.
심해가 전부 차갑기만 한 건 아닙니다. 열수분출공이라는 아주 특이한 환경이 있고, 그곳에서도 많은 생명체가 생태계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열수분출공은 해저 바닥에서 마그마 속의 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곳을 말합니다. 시커먼 연기처럼 보이는 물질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블랙 스모커(black smoker)’라고도 부릅니다.

▲ 블랙 스모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열수분출공은 주변의 따뜻한 물에는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미네랄과 같은 물질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미생물이 삽니다. 그리고 새우나 게, 조개 같은 여러 생물이 이 미생물을 먹거나 공생 관계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장님새우의 껍질에는 이런 미생물이 붙어삽니다. 장님 새우는 열수분출공 주위를 헤엄쳐 다니며, 덕분에 미생물은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얻습니다. 그리고 장님 새우는 그 미생물을 먹고 살아갑니다.
기다란 관처럼 생긴 관벌레(Riftia pachyptila)는 아예 소화기관이 없는 대신 몸속 기관에 미생물을 보관합니다. 관벌레는 미생물에게 미네랄을 공급하고, 미생물은 에너지를 만들어 관벌레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공생 관계를 맺고 있지요.

▲ 관벌레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놀랍게도, 심해의 대부분은 아직 우리 인류에게 미지의 장소입니다. 탐사가 어려워 아주 일부 지역만 조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희한한 생명체를 찾아낼 수 있었으니 지구의 심해를 구석구석까지 조사한다면 얼마나 더 놀라게 될지 궁금합니다.